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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감수성

솔티
2026-06-08
조회수 41


  •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육학 박사)
  • 성폭력예방교육의 인문학적 성찰
  • 등록 2026.05.03 18:24:29

[성폭력예방교육의 인문학적 성찰] ④성인지감수성은 진화의 산물인가

‘사람인지감수성’, 멸망이냐 진화냐


본지에 다양한 분야의 평론을 연재하는 김대유 교수가 이번에는 ‘성폭력 예방 교육의 인문학적 성찰’을 주제로 연재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2023년까지 9년간 약 1만 명의 유·초·중·고 교원이 아동학대 범죄자로 기록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교직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다. 이에 독자들과 함께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Falling Skies' 스틸컷. (사진=TNT)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Falling Skies' 스틸컷. (사진=TNT)

“진화냐? 멸망이냐? 선택하라.”

SF 영화 속의 외계인 정복자가 인간에게 한 말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이 높고 과학기술이 뛰어난 외계문명이 80억 지구 인구를 순식간에 죽이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을 상대로 사냥을 벌였다. 모든 도시는 파괴되고 테크놀로지는 정지되었다. 외계의 지도자는 궁지에 몰린 저항군 사령관 노아 와일리(톰 메이슨 役) 교수에게 항복을 권했다. 항복하면 인간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괴물로 재구조되어 오버로드로 불리는 에슈페니 종족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는 멘붕에 빠졌다.

“명예롭게 싸우다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에슈페니의 노예로 살아남아 진화할 것인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폴링 스카이 Falling Skies〉는 할리우드의 전형 그대로 외계인과 벌이는 처절한 전투 속에서 가족, 신념, 선택, 희생의 미덕을 담아내고 있다. 미덕을 지키자니 멸망할 것이고, 생존을 선택하자니 미덕을 잃을 위기에 몰린 인간집단은 두 패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다.

“우리가 힘과 지능이 높은 에슈페니의 군대가 되어 우주 정복의 우월한 종족으로 거듭나는 것은 축복이다.”(진화 측)

“저들은 끝없이 질주하며 모든 별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식인 메뚜기 떼들이다. 그들처럼 되느니 싸워서 이겨야 한다.”(멸망 측)

저항군 집단은 톰 메이슨의 지도를 따라 ‘멸망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때마침 에슈페니에게 패배한 외계의 다른 종족 군대와 연합을 이루어 전투를 벌인다. 마침내 저항군은 그들이 전해 준 생물학 무기를 통하여 에슈페니를 전멸시킨다.

폴링 스카이는 흔해 빠진 할리우드의 전형이지만, 나 같은 SF 심취자에게는 밤마다 5개 시즌 50개 단편을 보고도 후회감을 안기지 않는 수작(秀作)에 속한다. 심취와 중독은 다르다. 마음의 심취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에 영감(Inspiration)을 불어넣지만, 몸의 중독은 쉽고 빠르게 번지되 언제나 끝은 허탈감으로 얼룩진다.

심취감은 아무리 좁은 곳에 처해도 넓게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이고 중독은 아무리 넓은 곳을 차지해도 안으로 좁혀들어가게 하는 악몽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Falling Skies' 스틸컷. (사진=TNT)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Falling Skies' 스틸컷. (사진=TNT)

인간집단은 긴 역사 속에서 심취와 중독을 반복하며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욕망의 노예가 된 개인은 범죄(혹은 죄)의 길을 걸었고, 욕망에 끌린 국민은 전체주의를 탄생시켰다. 지금, 중동의 진주라 불리는 아름다운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폭격에 잿더미가 되고 있다.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땅을 빼앗긴 복수심에 젖은 레바논 국민은 선거에서 이스라엘 종족의 멸망(승리가 아닌 멸망)을 당론으로 내세운 ‘헤즈볼라’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후 헤즈볼라에 의해 정당 선택의 선거는 봉쇄되었고, 국민은 헤즈볼라의 인질이 되어 비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독일의 히틀러, 소련의 스탈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북한의 김정은, 러시아의 푸틴, 미국의 트럼프, 이란의 하메네이, 한국의 윤석열 등은 ‘욕망의 중독’에 빠진 그 나라 국민이 빚어낸 괴물들이다. 뭐든, 소도 언덕을 보고 비비는 법이다.

영화 폴링 스카이에서 주인공 톰 메이슨은 ‘진화’의 길을 선택하라는 에슈페니의 오버로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에슈페니는 우리 인간 종족을 제대로 ‘인지(認知)’하지 못했다. 우리가 변종이 되어 너희의 노예가 되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멸망이다. 그건 인간 문명의 멸망이다.”

막강한 외계군단 에슈페니는 약육강식의 원칙에 따라 “인간이 소멸보다는 변종을 원하는 집단”으로 이해했고, 톰 메에슨은 “인간은 멸망할지언정 변종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저항의 존재”로 인지했다. 즉 외계인과 사람 사이에는 ‘사람인지감수성’이 달랐다.

성인지감수성 관련 포스터. (사진=전북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성인지감수성 관련 포스터. (사진=전북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성인지감수성은 시대의 산물


성인지감수성은 성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차별, 불평등, 고정관념을 인식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개인의 태도뿐 아니라 사회 제도와 문화 전반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특히 개인의 태도와 능력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흔들린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당대의 시인이다. 27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허난설헌(1563, 강릉 生)과 천수를 누린 신사임당(1504, 강릉 生)은 유교의 이데올로기가 극심하게 대비되는 전환의 시대를 살았다.

성인지감수성의 시각으로 볼 때 조선은 허난설헌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뉜다. 명나라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조선의 친명파(親明波)는 득세했다. 친명파 신하들은 임금 앞에서 툭하면 대명률(大明律)을 들먹이며 명나라의 이데올로기와 관습을 조선의 정책으로 가져갈 것을 주장했다.

신사임당의 생존 시기에 조선의 혼인풍속은 모계를 내면적인 관습으로 삼았던 몽골의 원나라 풍습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비슷하게 결혼 초기에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봉사하고 사는 처가살이(장가)의 관습을 지닌 고려의 전통이 유지되었다. 그 덕분에 신사임당은 자신의 친정인 강릉에 머물며 비교적 안전하게 시화(詩畫)를 창작했다.

그러나 허난설헌 시기에 이르러 도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명나라의 영향으로 조선은 명의 정책을 따라야 했다. 그나마 여권이 존중되었던 장가제도는 폐지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시집살이(親迎)를 도입하였다.

조선의 사대부는 가부장제였고, 가부장제는 제사를 도구로 삼아 가문의 맥을 잇는 것이기에 제사 음식을 차리고 선영의 사당을 관리 할 노비 역할의 며느리가 필요했다. 친영제는 사대부 가문의 환영을 받았다. 반대로 시집살이의 친영제는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딸을 남의 집으로 보내며 한가득 혼수까지 보내야 하는 시집살이가 달가울 리도 없었고 그만한 재물을 마련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영제는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모든 양반이 먼저 시범 실시의 일환으로 친영제를 실천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세종 때에 시작한 친영제가 신사임당 때는 크게 확대되지 못했고, 그 덕분에 신사임당은 처가살이의 혜택을 보면서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사임당이 결혼한 후에까지 자손을 생산하면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다.

허난설헌 생가 터의 옛 '이광로 가옥'의 사랑채. 허균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사진=오마이뉴스)
허난설헌 생가 터의 옛 '이광로 가옥'의 사랑채. 허균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사진=오마이뉴스)

허난설헌은 불행하게도 친영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강릉 초당에서 남녀 차별 없이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시를 쓰던 난설헌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시책인 친영제에 따라 안동김씨 가문에 시집가야 했고, 시대적 조류에 떠밀려 기약 없는 시집살이에 내몰려야 했다. 처가살이의 혜택을 누렸던 신사임당처럼 허난설헌의 조건이 친정이었다면 그렇게 시집의 몰이해 속에서 요절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종에서 시작하여 선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된 재가 금지, 서얼 차별, 친영제는 여성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요즘 말하는 가문, 족보 제도가 도입되어 열녀문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여성은 재혼이 금지되어 한밤중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끌려가는 약탈혼(보쌈)이 유행했으며, 시집살이가 성행하고 목을 매다는 며느리가 늘어났다. 가문에 열녀가 나오면 병역과 세금이 면제되는 혜택이 주어지자, 집 집마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으라는 ‘은장도 열풍’(며느리에게 은장도를 주어 자결하라는)이 불었다. 명예살인과 여성의 노예화가 이익이 되는 조선 사회에서 백성은 신음했다.

허난설헌의 불행과 비극은 다른 면에서 보면 국가폭력의 산물이었다. 동시에 허난설헌을 관통하는 그 성인지감수성은 ‘여성을 노예로 보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개인의 문명은 시대의 문명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아주 가끔 우주의 공허가 혼돈에 의해 흔들리면서 그 오류로 생명이 탄생하듯 인류의 역사에도 가끔 전체주의를 극복하는 착한 왕정과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는 것은 역시 신비한 일이다.

난설헌집(사진=허균허난설헌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난설헌집(사진=허균허난설헌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성인지감수성을 개인의 문제, 법률의 과제로 보는 지금의 관점은 매우 제한적이다. 허난설헌이 고초를 겪은 당시에도 깨어난 선비들은 여성 차별이 천륜을 어기는 나쁜 제도라는 것을 인지했다. 인간 평등에 대한 천부인권의 의견이 한문소설과 편지를 통해 선비들 간에 은밀히 오갔지만 ‘왕정제도’에서 표면 위로 부상(浮上)하지는 못했다. 조선의 여성 차별은 결국 대한제국의 노비제도 폐지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국의 문명이 상륙한 뒤에라야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성평등으로 완결되어야 할 성인지감수성

한국에 양성평등의 바람이 분 것은 1990년대다. 한국 여성의 전화, 성폭력연구소 등이 진보적인 학자, 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여성 차별에 대한 제도의 폐지가 주장되었다. 그 결실로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각계의 폐지 요구를 받아왔던 호주제는 개정 민법이 시행된 2008년 1월부터 사라지게 됐다. 역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제도 개혁에 힘입은 바가 컸다. 이후 양성평등 운동은 유네스코의 기준에 따른 성평등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전교조가 설립되면서 낡은 교육제도를 타파하고 참교육을 세우자는 참교육 운동이 벌어졌다. 그 여파로 학생인권조례와 교육복지가 만들어졌다. 진보적인 전교조 보건위원회와 (사)보건교육포럼에 속한 소수의 보건교사들은 교육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입법을 통해 보건교과를 만들었고, 보건교과서를 제작하여 성평등과 성인지감수성을 정식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것은 한걸음 한걸음마다 피맺힌 성평등 활동가, 교육운동가들의 저항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건 그냥 SF 영화 폴링 스카이의 저항군 같은 활동이었다. 투사들의 핏값으로 얻어 낸 민주주의처럼 저절로 된 것은 없는 법이다.

성평등 관련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성평등 관련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어쨌든 지금은, 성인지감수성의 시대다. 현대의 성인지감수성은 남녀 차이를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차별과 권력 구조까지 읽어내야 하는 주제다. 같은 행동이라도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평가되는 경우, 직장과 학교에서 특정 성별이 불리한 구조,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시선, 이런 요소들을 인식하고 문제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한 성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거나 법적 제도가 그 한계를 노정한다면 그건 문제다. 성인지감수성이 법정이나 학교에서 제도적 결함에 의해 일방적으로 남성이 매도되거나, 반면에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이 묵인되거나, 정부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제도 설계를 미루는 일(차별금지법은 종교계의 부당한 압력에 의해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성인지감수성은 여성의 피해 보호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안전을 위한 완결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학생인권을 넘어선 교육인권, 양성평등을 넘어선 차별금지, 성적자기결정권의 적극적인 문화 성립이 시대의 과제로 설정되어야 할 시기다.

선진국의 사례 또한 완결구조라는 차원에서 성인지감수성의 합리적 제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합리적 피해자 기준 + 적극적 동의 중심’으로 성인지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직접 쓰기보다는 ‘합리적 피해자(reasonable victim)’ 또는 ‘합리적 여성(reasonable woman)’의 기준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유럽의 움직임은 성적자기결정권을 토대로 한 성인지감수성의 제도화에 있다. 그건 어느 일방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책무감을 안겨주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명확한 동의가 없으면 모든 성관계는 불법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일본은 ‘엄격한 증거주의 + 점진적 변화’라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물증과 명확한 강제성 입증을 매우 중시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보다 성인지감수성 적용이 늦고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그것이 ’천천히 안전하게‘로 가는 일본의 관습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가’ 중심, 한국은 ‘피해 현실을 반영해 판단 보완’, 일본은 ‘객관적 증거 중심에서 점진적 변화’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인지감수성은 ‘피해자 편들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방식에 맞게 ‘법 기준을 조정’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 점이 매우 보수적이다.

☞다음 호는 〈‘성적자기결정권’의 시각과 변화>이다.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육학 박사) 김대유 경기대 겸임교수(교육학 박사)

글쓴이 김대유는 현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교육학 박사), 한국건강과성연구소 소장,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과 국가청소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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