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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성적자기결정권의 시각과 변화

솔티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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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예방교육의 인문학적 성찰] ⑤‘성적자기결정권’의 시각과 변화





본지에 다양한 분야의 평론을 연재하는 김대유 교수가 이번에는 ‘성폭력 예방 교육의 인문학적 성찰’을 주제로 연재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2023년까지 9년간 약 1만 명의 유·초·중·고 교원이 아동학대 범죄자로 기록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교직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다. 이에 독자들과 함께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전쟁보다 잔인한 섹스 스트라이크

세상에 섹스만큼이나 은밀한 주제가 또 있을까? 은밀할수록 목은 마르고, 알수록 속수무책이니 섹스는 인간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섹스 없이도 살 수는 있어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사라지만, 섹스와 사랑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기원전 40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날을 지새우던 그리스의 강국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수십 년째 지긋지긋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전투에 지쳐가던 시절, 믿거나 말거나 한 발랄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테네의 젊고 아름다운 유부녀 리시스트라테는 뜻을 함께하는 여자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남편들은 전투를! 우리 여자들은 파업을! 함께 섹스를 거부할 여자들은 모여라.”

남자 하나 제대로 찾아보기 어려워 쥐 죽은 듯 조용하던 골목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나이 지긋한 유력 귀부인부터 평범한 시민군의 젊은 아내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여인들이 순식간에 선동가 리시스트라테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 소문은 곧 적국인 스파르타에도 전해졌다.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스파르타의 여인들 역시 뜻을 함께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섹스 스트라이크' 동맹이 결성됐다.

처음에는 이를 비웃던 남자들도 점차 낯선 상황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투 사이사이에 배우자와 나누는 섹스야말로 지상 최대의 즐거움이자 불타는 욕망의 실현이었는데, 그것이 어처구니없이 봉쇄된 것이다.

양국의 남자들은 집단적인 혼란에 빠졌고 전투 의욕은 급격히 떨어졌다. 장군들에게 싸울 의욕을 잃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었다.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섹스 파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이 세기의 일화는 진위 여부를 떠나 오늘날까지 영화와 연극 등 다양한 작품으로 재탄생하며 꾸준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견할 만한 이야기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기준은 다름 아닌 미국의 물가였다.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치솟은 유가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주부들의 장바구니는 점점 비어 갔다. 분노한 주부들은 남편에게 가계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여론을 통해 전쟁 종식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섹스라는 단어가 장바구니로 바뀌었을 뿐, 주부들의 물가에 대한 분노가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며 휴전 여론을 만들어 낸 셈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권에 매몰된 성적 자기결정권

결국 섹스 파업과 장바구니 물가는 전쟁 종식의 매개체였고, 이를 주도한 세력은 여자들이었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과 비중을 떠나, 그 용도의 의미가 남녀라는 두 성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치우쳐 있었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보여주는 비유다.

리시스트라테의 성 혁명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아테네의 여자들이 오늘날의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을 알고 행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직 남편을 가정으로 돌아오게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기적 같은 섹스 스트라이크의 전설을 낳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개인이 자신의 성적 행위 여부와 상대방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이다. (대법원 판례)

다만 아테네의 여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전설로 치부되더라도 최초의 문헌에 등장하는 리시스트라테의 성 파업은 여자들이 성을 무기로 집단행동에 나선 첫 사례다.

반면 역사에서 남자들이 자신들의 성을 매개로 파업하거나 거래한 사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기껏해야 아마존 여인국에 납치돼 씨내리로 이용된 뒤 폐기 처분됐다는 야사(野史)가 전해질 뿐이다.


고대에 이어 중세에서도 여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신이나 남자의 전유물처럼 활용됐다. 잔 다르크는 신의 이름으로 지켜져 온 순결(처녀성)을 사제들에게 감식당하며 치를 떨어야 했다. 유럽의 기사들은 의처증에 사로잡힌 듯 십자군 전쟁에 나서면서 아내들에게 정조대를 채웠다.

조선의 양반가 여인들은 시부모와 남편에게 은장도를 받았고, 남편이 죽으면 가슴을 찔러 자결할 것을 강요받았다. 남편을 따라 자결하면 관가에서는 열녀문을 세워주었고, 시댁은 병역 면제와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조선 여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결국 '은장도 자결'로 이어지는 시댁의 복덩어리로 이용됐다.

고대 사회에서 여자의 성(처녀성)은 곧 집안의 명예였다. 중세 유럽에서 여자는 남편의 소유물처럼 취급됐고, 영국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아내 매매(wife selling)가 이뤄졌다.

여자들에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 개념조차 없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결정권이었으며, 아내와 딸의 성은 재산 목록의 일부처럼 취급됐을 뿐이었다.

(사진=펙셀)
(사진=펙셀)

전쟁의 비극이 불러낸 성적 자기결정권

인간의 난제(難題)에는 언제나 철학이 있었다. 철학은 '왜?'로 시작되는 주제였고, 그 물음이 만들어 낸 답은 '신은 신답고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17세기부터 철학자 존 로크와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몸의 자유를 포함하는 자유론을 펼쳤다. 인간다움은 인간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됐다.

20세기에 인류는 끔찍한 상황에 직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지옥의 묵시록을 경험했다. 2천만 명이 몰살됐고, 원자폭탄이 터지며 지구 종말의 현실을 목도했다.

2차 대전의 영향으로 인류는 유엔을 구성해 각종 국제법을 성안했다. 인권의 개념이 등장했고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도 인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녀 두 성 가운데 오랫동안 피지배적 위치에 놓여 있던 여성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떠올랐다.

성과 관련된 자기결정 역시 중요한 인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성의 권리, 성폭력 피해자 보호, 사생활 보호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전쟁의 비극이 세상 저편에서 불러낸 개념이 성적 자기결정권이었고, 그 보호 대상은 주로 여자였다.

유엔이 하면 한국도 한다. 여성단체와 청소년 성교육 단체 등에서는 여성의 인권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밤낮없이 부르짖었다.

그 덕분에 우리도 헌법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는 쓰이지 못했지만, 그 개념만큼은 기소나 판례 등을 통해 확장됐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와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근거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연이어 내놓았다.

2001년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헌법상 보호되는 기본권임을 명확히 했고, 2015년에는 간통죄 위헌 결정을 통해 성인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신의 성생활을 결정할 권리가 헌법상 보호되는 기본권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보건교사들이 10월 7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열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시안 마련을 위한 2022 개정 교육과정(교과별, 총론) 공청회'에 참석해 '초등보건과목 고시, 담당교사 자격 부여'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교사들의 주장은 공청회장을 폭력적 행위로 방해한 일부 인사들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고 폭력 사태에 초점이 맞춰져 정당한 주장마저 묻히는 결과를 초래했다.(사진=보건교육포럼)
보건교사들이 10월 7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열린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시안 마련을 위한 2022 개정 교육과정(교과별, 총론) 공청회'에 참석해 '초등보건과목 고시, 담당교사 자격 부여'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교사들의 주장은 공청회장을 폭력적 행위로 방해한 일부 인사들로 인해 논점이 흐려지고 폭력 사태에 초점이 맞춰져 정당한 주장마저 묻히는 결과를 초래했다.(사진=보건교육포럼)

교육 없이 성적 자기결정권 없다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 보건과 공청회(교원대, 2024.10)가 열린 한국교원대학교에 극우 기독교 세력과 태극기부대 200여 명이 난입했다. 그들은 '성교육, 성적 자기결정권, 섹슈얼리티 교육 절대 반대'를 외치며 난동을 피웠다.

심지어 보건교사들이 보건교과에 동성애 조장을 수록해 가르친다는 거짓말까지 구호로 외치는 등 집단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 그들은 방청객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발제자와 토론자들을 협박했다.

그들의 테러 배후로 각 언론은 극우 성향의 기독교 세력과 태극기부대를 지목했다. 당시 공청회의 사회를 맡았던 필자는 호루라기를 불며 방어진을 지휘했고, 그들의 목표였던 공청회 파행을 막아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학교 성교육을 폐지하고 대신 자신들이 순결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의 청소년문화센터를 자신들이 접수해 돈벌이를 하겠다는 속셈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여성 인권, 섹슈얼리티,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과 제도로 보장돼야 하고 교육으로 유지돼야 한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교육이다.

헌법 제20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국민이 종교에 예속되지 않는 나라지만, 여성 인권을 가장 탄압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의 행태는 중세의 성도덕 관습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에는 그래도 주님의 보호하심이라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다 더,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성들의 권리이자 목소리라면(물론 원칙적으로는 남녀 모두의 문제이지만), 그 권리의 의미와 보장은 교육으로 구현돼야 할 문제다.

극우 세력의 주장대로 학교에서 성교육이 사라지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교육 없이 성적 자기결정권은 없고, 성적 자기결정권 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성폭력 관련법이 강화되면서 남녀의 섹스는 핸드폰 안으로 흡수됐다. 눈을 맞추고 마음이 맞아 잠자리를 하고 싶어도 고발당할까 두려운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우리 녹음하고 섹스해요. 우리 서로 원하는 거 맞지요?"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남녀의 성이 자기결정에 따라 아름답고 자유롭게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핸드폰 녹음에 의지하는 사랑은 어쩐지 슬프다.

학교 보건수업, 성교육, 도덕교육에서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배우고, 토론하고,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 다음 호는 '성교육에서 강조되어야 할 감정의 영역'입니다.

김대유 서영대 외래교수김대유 경기대 보건교육전공 교수

글쓴이 김대유는 현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교육학 박사), 한국건강과성연구소 소장,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과 국가청소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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